'앤디 워홀'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3/29 앤디워홀과의 가상의대화 (2)

앤디워홀과의 가상의대화

Posted by 단아소년 Culture : 2007/03/29 00:20












당신은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발레리 솔라니스가 총구를 겨누었던 그 순간을 기억하는가?

느닷없이 그녀가 팩토리로 들어와 총을 쏘았다. 그것도 세발씩이나 !
난 5시간 대수술을 받은 후 살아 났고, 사실 솔라니스는 팩토리의 멤버였다.
내 영화 <나, 남자>에 출연한 후에 자기 시나리오 <엉덩이를 내밀어>를 영화로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
귀찮게도 말이다..


솔라니스가 그렇게 격분한 걸 보니 당신이 원고와 원고료를 떼어먹은 거 아닌가?

뭐..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그녀는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날 쐈다고 주장했었다. 누가 믿었을까?
아무튼 중요한 건 사건 직후 내 작품 가격이 치솟았다는 거다.
생존하는 미국 화가 중에선 최고로 !












<세개의 콜라병 Three Coke Bottles, 1962>


그런 사람들을 불러모으려고 팩토리를 만든건가?

내가 부른게 아니다. 그들이 온거지.
난 그 무렵 영화에 빠져 있었고 제작비를 벌기 위해 다작할 수 있는 거대한 작업실을 만들었을 뿐이다.
예술적인 에너지로 폭발 일보 직전인 젊은 작가들이 그곳을 사랑했다.
케루악, 긴스버그, 주디 갈런드, 롤링스톤스가 드나들었고,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다락방 한 구석에서 연습을 했다.


당신은 팩토리가 근면과 무질서를 겸비한 천국이라 믿겠지만,
당연히 로큰롤과 함께 마약과 섹스도 넘쳤을 것이다
.

그렇게 폄하하지 마라. 난 팩토리가 60년대의 미국을 대변하는 곳이라 믿는다.
서로의 문제점을 실토하긴 했지만 감히 판단하거나 비판하진 않았다.
상류와 하류, 마약 중독자, 여자 상속인들, 성전환자, 미소년과 시인까지 마구 뒤섞여 생산력과 지적호기심을 발산했다.
베로키오, 레오나르도, 루벤스의 작업실이 부럽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워홀리즘에 도취된 사람들의 재능을 흡수하기만 한건가?

난 원래 하루라도 외출하지 않으면 못견디는 사회병 환자였다.
그렇지만 내 총애를 얻어 영화에 출연해 보겠다고 싸우는 이들을 보는건 흥미로웠다.
그래서 긴장과 질투, 대결 장면을 소재로 영화를 찍었다.
초기 내 영화는 인간관계를 담은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관계와 말, 감정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나중엔 작업에 방해되어 '쓰레기 사절!' 이라는 문구를 써붙였는데도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작업때문이 아니라 또 총을 맞을까 두려웠던게 아니라?

그걸 즐기는 사람도 있나?
난 사교의 대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기로 했다.
언젠가부터 작업실에는 영화배우, 패션디자이너, 여자 상속인과 유럽귀족, 심지어
이란의 왕도 드나들었다.


영화 얘기를 해보자. 당신이 시네마 키드 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어린시절 난 배우들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셜리템플에게는 사인이 적힌 답장도 받았고, 영화만큼 훌륭한 객채는 없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입체적이고, 동시에 감성적인 표면을 지니고 있으니까.









<여장한 자화상 Self-Portrait in Drag, 1981-1982>

50년대 당신은 남자 누드를 그렸다. 이후 사랑을 나누는 남자들을 폴라로이드로 찍어
<토르소>나 <섹스파티>같은
영화도 만들었고...당신은 포르노그래피 추종자였나?

포르노만큼 날 흥분시키는 건 없었으니까!
취향에 맞는 잡지나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는 것과 같은거다.
영화는 인간의 음란한 관심을 어필해야 한다.
서로의 감정을 외면해 무감각해지고 소외되는 이 시대, 영화만이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
화려함과 포르노는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노골적인 성애장면이 가득한 '나쁜 영화'에 매료됐다.
하지만 난 모든 영화를 열심히 봤다. 주류부터 아방가르드까지.


당신이 사랑한 배우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나?

아름답고 젊은 남자, 여자, 폭주족, 여장남자, 튀는 사람들, 극중 인물과 100% 안어울리는 배우.
난 '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때 배우들이 '배역사이에 있습니다' 라고 대답할때가 좋았다.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니까.











<켐벨 수프캔 Campbell's Soup : Old fashioned Vegetable,1969>

그중 <첼시의 소녀들>은 상업성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했다.
타락, 교란, 동성애, 마약, 누드라는 단어를 현실에 적용한 전략이
적중했다.
하지만 <부억 Kitchen>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영화였다.
한 남자는 계속 코를 풀고 다른 남자는 냉장고 문을 여닫는걸 반복하고..

제발 20세기를 잘 표현한 영화라고 얘기해 달라! 훗날 시대의 반란을 얘기할때 이영화가 적격이라는 걸 깨달을거다.
지루한 테마, 예술성으로 과장된 영화보다 훨씬 나았다. 아! 무엇보다 헐리우드에 진출하지 못한것이 아쉽다.
피라마운트의 이사인 굴드와 사귀기도 했었는데, 그가 날 차버렸다.


총격사건 이후 당신의 총명함이 예전같지 않다는 소문이 있었다.
<마우쩌둥의 초상화>처럼 60년대 전성기에 필적할 만한 작품을 내놓은 듯 했었지만
70년대는 이렇다 할 게 없었지 않았나?

그렇게 말하지 말라. 그 와중에서도 <해골> 연작과 <망치와 낫> <최후의 만찬> 같은 썩 괜찮은 작품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리고 난 60년대말부터 전문적으로 초상화를 그려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돈을 벌기위해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하기로 한건가?

단돈 2만 5천달러만 내면 누구라도 오케이! 전력을 살짝 귀띰해 줄까?
주문이 성사되면 고객을 작업실로 초청했고, 유명인사 한두 명을 양념으로 끼워 넣었다.
그때의 대화도 모두 녹음했다. 한껏 행복감에 취해 있을때 고객사진을 찍고 그의 취향에 맞게 색과
물감 칠하는 법을 정한다. 이렇게 평생 1천점의 초상화를 그렸다.


예술가로 남고 싶어했지만 당신을 예술가로 만든거 비즈니스 감각이었군..아닌가?

돈버는 것도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고, 비즈니스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하지만 사기는 아니다.
내 고객을 최고로 접대한 것뿐이니까.
사람들이 예술품을 가졌다는 사실보다 그 과정을 즐거워한다는걸 안거다.
가짜 퍼포먼스로 진짜 예술을 보여주고 싶었다. 혹은 그 반대이거나.


마오쩌둥을 그린것도 별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당신을 그렇게 봤다.

그게 바로 팝아트의 속성이다!
사람들은 내가 그렸다는 이유로 공산주의라 생각했다.
실은 닉슨이 그를 만났다는 뉴스를 보고 그렇게 해본건데..그 후로는 공산주의를 표현하기 위해 망치나 낫을,
파시즘을 위해 해골을 그려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해골도 파리 고물상에서 산거다.


마릴린 몬로나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사람들의 초상화는 얼굴도 안보고 그리지 않았나?

아! 마릴린은 정말 아름다운 대상이었다.
하지만 스타 숭배는 피와 살로 된 인간을 향한것이 아니다.
육체적으로 현존하는 스타는 이런 환영이 실제 존재한다는 증거를 제공할 뿐이다.
미국은 휼륭하게도 영웅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곳이다. 브라보!












<죽음을 맞이한 그해 그린 자화상 Self-Portrait, 1986>

당신 자화상에 있는 얼빠진 표정은 의도한건가?

어머니가 내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아나?
주제넘게 나서지는 말되 네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켜라!
나는 날 알려야했다.
대학 전시회에도 자화상을 출품했다.
'솔직한 사람들은 나에게 인상을 썼지만 나는 코를 풀 수 있다'는 제목으로
진짜 코푸는 모습을 찍었거든. 하하! 사람들은 내 작품보다 얼굴이 들어간 작품을 흥미로워했다.


환호받길 바라는 당신이 파티나 강연에서 앨런 미드제트에게 워홀 행세를 시켜 장난을 쳤다니 !

장난이라니? 사람들은 '앤디'를 어디서나 볼수 있는 것에 만족했다. 가짜도 진짜처럼 행세 할 수 있고
진짜도 언제든 가짜가 될 수 있다.
난 내 가발이 진짜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야겠다 생각한 적이 없다.
너무 가짜같아서 더욱 멋져 보이지 않나?
내 후원자인 헨리 겔드젤러는 '얼간이 같은 금발' 때문에 대중들은 워홀과 팝운동을 동일시 했다고 했다.
멋진말이다. 난 복제본이 원본의 가치를 뛰어넘는 시뮬라크르의 시스템을 숭배한다.


그나저나,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는데
왜 로버트 라우센버그, 제스퍼 존스의 작품에 비해 값이 떨어졌다고 애통해했나?

억울했다. 내가 그들보다 못한게 뭔가?
그들도 상업미술가 출신이었고, 게이었다. (ㅡ_ㄱ)
하지만 난 이들이 성공적인 개인전을 열때까지 화랑을 확보하지 못했었다.






예전 대학시절 교양수업으로 듣던 서양 근대사 시간에 처음 만났던 앤디 워홀.
대중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예술을 접근하기 쉽게, 대량화해서 찍어냈던 발상의 전환이
참 마음에 들어 한동안 열광했던 기억이 난다.
오랫만에 다시 한번 그의 신선했던 열정을 만나러 가봐야겠다.

전시회: 앤디 워홀 팩토리
장소: 삼성미술관 리움
기간: 2007년 3월 15일~6월 10일

 «이전 1  다음»